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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완전한 영혼’ 정찬 작가 “언어는 진실 찾는 도구이자 생명체”
입력 2022.01.23 (21:30) 수정 2022.01.23 (21:30) 영상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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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소설가

Q. 소설의 주인공인 '장인하'는 어떤 인물?

1980년 5월 당시 장인하는 인쇄소 식자공이었다. 장인하는 생각을 표현하는 글자에서, 글자를 이렇게 만질 수 있고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대해서 굉장히 기쁨을 느끼는 노동자예요. 자신의 노동에서 어떤 깊은 기쁨을 느끼면서 노동을 하는 아주 천진한, 맑은 영혼의 소유자거든요.

Q. 장인하가 계엄군의 총을 뺏으려 하는데?

천진함이죠. 어린아이같은 어떤 영혼의 천진함 때문에 자기가 간절하게 이야기를 하면 뭔가 이렇게 막을 수 있다는 어떤 믿음을 갖고 다가갔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아주 위험하고 어이없는 그런 행동일 수가 있죠. 그래서 깊은 상처를 입게 되죠.

Q. 귀를 다친 뒤 '울음소리'를 듣는 설정은 왜?

울음소리가 뭔가 장인하의 어떤 상황에 맞는 어떤 설정으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울음소리라는 것은 굉장히 뭔가 단절된 소리가 아니고 흘러가는 소리거든요. 뭔가 비유를 하자면 물처럼 흘러가는 소리거든요. 그게 이제 장인하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그런 걸 은유한 거죠.

Q. 왜 장인하는 분노와 원한을 품지 않을까?

조금 이상적인 어떤 아주 맑은 영혼의 캐릭터를 상정을 했어요. 그런데 그것을 비유를 하자면 '식물적 정신'을 가진. 이 식물이라는 것은 뭔가 죽음을 스스로 삶 속에 품고 있는 존재거든요. 생각을 해보세요. 겨울이 오면 식물이 죽잖아요. 식물은 죽음의 상태로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죽음이라는 것은 죽음 속에 봄이 포함돼 있죠. 봄이 잉태돼 있는 거죠. 죽음을 겪어야만, 죽음의 시간을 지내야만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는 봄이 온다는 것을 식물은 알고 있는 그런 존재거든요. 그래서 죽음을 삶 속에 생명체처럼 품고 있는, 그런데 품고 있는 죽음이 뭔가 삶의 욕망을 정화하는 거죠.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죽음을 뭔가 생명처럼 품지를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삶의 욕망에 한없이 휘둘리거든요. 거기에 매몰되는 거죠. 그런데 식물이라는 그런 생명은 죽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죽음 자체가 삶의 욕망을 정화하는, 그래서 굉장히 맑은 어떤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존재, 일종의 은유적인 존재로 제가 만든 인물이에요.

Q. 장인하 같은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

있겠죠. 우리가 잘 볼 수 없어서 그렇지 곳곳에 저는 있다고 생각해요. 존재하고 숨 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식물적 영혼들이 우리 삶 속으로 흘러 들어와서 뭔가 우리가 모르게 정화되는 그런 생명체들이 저희들 주변에 곳곳에 있다고 저는 믿거든요.

Q. 소설을 쓸 당시 어떤 고민을 했나?

저는 사실은 소설을 쓰는 문청 시절에는 우리의 현실과 역사에 사실은 조금 멀리 있었어요. 언어에 대한, 이 언어라는 것은 저한테 아주 신비하고 경이로운 어떤 생명체로 다가왔는데. 그 생명체는 뭔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가 아닌, 그 현실과 다른 세계를 만들 수도 있거든요. 언어를 통해서. 그런 점에서 언어에 제가 매혹이 됐어요. 이게 작가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에요. 현실을 투영한, 현실 속에서 뭔가 결핍돼 있는, 뭔가 결핍이 되고 부재하는 어떤 세계에 대한 갈증같은 것들이 바탕이 돼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거든요. 그 새로운 세계는 현실 세계를 반사하고 오히려 투영하고, 또 적극적으로 말하면 현실 세계를 비판하는 그런 간접적인 역할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작가가 된 가장 큰 이유가 그런 언어의 어떤 역할 기능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1980년 광주항쟁이 일어나면서 저는 광주항쟁 자체에 대한 어떤 관심도 있었지만, 그 광주항쟁을 일으킨 세력들이 광주항쟁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언어들, 그 언어들이 굉장히 사실과 진실과 다른 왜곡되고 굴절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거짓 언어를 우리들에게 전달하거든요. 그것은 언어의 타락이죠. 저는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절망하고 분노를 했어요. 그 언어를, 언어라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거든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이면서 그 매개체를 통해서 사회를 보여주고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런 언어를 거짓의 언어, 굴절된 언어, 왜곡된 언어로서 국민들에게, 우리들에게 전달하는 게 굉장히 절망스럽고 분노스러웠어요. 그래서 제가 광주를 소재로 소설을 제법 많이 썼는데, 그 소설 속에 언어에 대한 관심이 항상 들어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장인하가 식자공이라는 것도 그런 언어에 대한 저희 관심이 간접적인 투영이겠죠.

Q. '식물적 정신'이란 표현은 만든 건가?

제가 그걸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냥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한 거죠. 사실은 우리 사람이 태아가 잉태될 때 저는 과학책을 보고 그걸 알았거든요. 태아가 잉태되면서 두 달 동안은 태아의 구조가 식물의 구조와 가깝대요. 그래서 두 달이 지나면 구조가 동물로 변화해 간다고 하거든요. 그러면 두 달 동안 우리는 식물의 상태였어요. 우리의 몸속에, 우리의 영혼속에 식물의 DNA가 있는 거죠.

그 순간 나는 하나의 식물이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고, 짐승의 이빨이 들어오면 찢기고, 꺾으면 꺾이고, 자르면 잘리는 식물.

Q. 장인하의 정신은 이 시대에도 유효할까?

오히려 더 유효하죠. 더 필요하고, 더 그런 영혼들을 우리가 지금 더 많이 그리워하고 갈구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지금 자본주의 사회가 굉장히 뭔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굉장히 차갑게 만들잖아요. 그리고 타인에 대한 어떤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그런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영혼들에 대한 갈망은 지금은 더 증폭되어 있겠죠.

Q. 소설을 쓴다는 것은?

모든 예술은 제가 알기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그런 기능과 역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뭔가 우리가 현실 속에서는 이제 가령 진실이라는 게 안 보이잖아요. 진실처럼 오리무중인 어떤 생명체인 것은 찾기가 힘들 거예요. 누구나가 말하는 진실들은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어려운 게 가장 보여주기 어려운 게 진실이라는 대상일 거예요. 그거는 진실은 진리와 달라서 어떤 답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것을 찾아나가는 오로지 과정만 있을 뿐이죠. 예술이라는 것도, 소설이라는 것도 그런 진실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예술은 질문이죠. 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죠. 철학이나 종교나 그런 부분들은 답을 제시하는 역할을 갖고 있지만,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는, 그 질문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성찰하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나갈 계획인지?

항상 작품이라는 것은 새로움이어야 되거든요. 새롭다는 것은 소재의 새로움의 측면이 아니고, 뭔가 소설이라는 생명체가 갖고 있는 내면의 새로움이겠죠. 그 내면의 새로움이란 것은 미학적인 새로움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요구되는. 그래서 저는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항상 처음 쓰는 것 같은 혼란에 빠져요. 아마 다른 작가도 다 그럴 거예요. 이 소설이라는 것은 뭔가 이렇게 쓰면 쓸수록 더 뭔가 이렇게 익숙해지는 게 아니고 항상 새로운 작품 앞에 서게 되면 항상 소설이 낯설어지는, 항상 초보자가 뭔가 처음 다가가는 그런 느낌 속에 빠지는 거죠. (연습이 안 되는 거군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그거는 그거는 연습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에너지가 필요한 거죠.

Q.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어라는 것은 굉장히 사실, 더 나아가 진실을 추구하는 어떤 도구이면서 생명체인데 그 도구를 너무나 함부로 쓰는,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쓰는, 그러면서 그 언어가 때로는 폭력이 되거든요. 그런 언어의 폭력에 대해서 굉장히 걱정스러워요. 언어에 대한 어떤 우리의 자세는 좀더, 좀더 주의 깊게, 좀더 정결한 시선으로, 정결한 마음으로 언어를 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작가들이 언어를 다룰 때는 함부로 안 다루죠. 작가는 저는 장인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진정한 작가라면 그 장인은 자기가 만드는 것에서 생명을 느낍니다. 생명체를 만드는 사람이죠. 그 생명체를 함부로 못 만들죠. 그 생명체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그 물건을 제대로 못 만들어요. 그러니까 사랑의 깊이가 그 작품의 깊이가 되는 거죠. 그러려면 그 생명체의 도구가 언어인데, 지금 세상은 언어를 너무나 함부로 사용을 해요. 너무나 남용을 하고. 그러면서 관계와 공동체를 굉장히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어에 대해서 좀더 사려깊은, 좀더 마음가짐을 좀 다르게 가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편집: 성원영
  • [인터뷰] ‘완전한 영혼’ 정찬 작가 “언어는 진실 찾는 도구이자 생명체”
    • 입력 2022-01-23 21:30:13
    • 수정2022-01-23 21: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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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소설가

Q. 소설의 주인공인 '장인하'는 어떤 인물?

1980년 5월 당시 장인하는 인쇄소 식자공이었다. 장인하는 생각을 표현하는 글자에서, 글자를 이렇게 만질 수 있고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대해서 굉장히 기쁨을 느끼는 노동자예요. 자신의 노동에서 어떤 깊은 기쁨을 느끼면서 노동을 하는 아주 천진한, 맑은 영혼의 소유자거든요.

Q. 장인하가 계엄군의 총을 뺏으려 하는데?

천진함이죠. 어린아이같은 어떤 영혼의 천진함 때문에 자기가 간절하게 이야기를 하면 뭔가 이렇게 막을 수 있다는 어떤 믿음을 갖고 다가갔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아주 위험하고 어이없는 그런 행동일 수가 있죠. 그래서 깊은 상처를 입게 되죠.

Q. 귀를 다친 뒤 '울음소리'를 듣는 설정은 왜?

울음소리가 뭔가 장인하의 어떤 상황에 맞는 어떤 설정으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울음소리라는 것은 굉장히 뭔가 단절된 소리가 아니고 흘러가는 소리거든요. 뭔가 비유를 하자면 물처럼 흘러가는 소리거든요. 그게 이제 장인하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그런 걸 은유한 거죠.

Q. 왜 장인하는 분노와 원한을 품지 않을까?

조금 이상적인 어떤 아주 맑은 영혼의 캐릭터를 상정을 했어요. 그런데 그것을 비유를 하자면 '식물적 정신'을 가진. 이 식물이라는 것은 뭔가 죽음을 스스로 삶 속에 품고 있는 존재거든요. 생각을 해보세요. 겨울이 오면 식물이 죽잖아요. 식물은 죽음의 상태로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죽음이라는 것은 죽음 속에 봄이 포함돼 있죠. 봄이 잉태돼 있는 거죠. 죽음을 겪어야만, 죽음의 시간을 지내야만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는 봄이 온다는 것을 식물은 알고 있는 그런 존재거든요. 그래서 죽음을 삶 속에 생명체처럼 품고 있는, 그런데 품고 있는 죽음이 뭔가 삶의 욕망을 정화하는 거죠.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죽음을 뭔가 생명처럼 품지를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삶의 욕망에 한없이 휘둘리거든요. 거기에 매몰되는 거죠. 그런데 식물이라는 그런 생명은 죽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죽음 자체가 삶의 욕망을 정화하는, 그래서 굉장히 맑은 어떤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존재, 일종의 은유적인 존재로 제가 만든 인물이에요.

Q. 장인하 같은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

있겠죠. 우리가 잘 볼 수 없어서 그렇지 곳곳에 저는 있다고 생각해요. 존재하고 숨 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식물적 영혼들이 우리 삶 속으로 흘러 들어와서 뭔가 우리가 모르게 정화되는 그런 생명체들이 저희들 주변에 곳곳에 있다고 저는 믿거든요.

Q. 소설을 쓸 당시 어떤 고민을 했나?

저는 사실은 소설을 쓰는 문청 시절에는 우리의 현실과 역사에 사실은 조금 멀리 있었어요. 언어에 대한, 이 언어라는 것은 저한테 아주 신비하고 경이로운 어떤 생명체로 다가왔는데. 그 생명체는 뭔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가 아닌, 그 현실과 다른 세계를 만들 수도 있거든요. 언어를 통해서. 그런 점에서 언어에 제가 매혹이 됐어요. 이게 작가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에요. 현실을 투영한, 현실 속에서 뭔가 결핍돼 있는, 뭔가 결핍이 되고 부재하는 어떤 세계에 대한 갈증같은 것들이 바탕이 돼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거든요. 그 새로운 세계는 현실 세계를 반사하고 오히려 투영하고, 또 적극적으로 말하면 현실 세계를 비판하는 그런 간접적인 역할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작가가 된 가장 큰 이유가 그런 언어의 어떤 역할 기능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1980년 광주항쟁이 일어나면서 저는 광주항쟁 자체에 대한 어떤 관심도 있었지만, 그 광주항쟁을 일으킨 세력들이 광주항쟁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언어들, 그 언어들이 굉장히 사실과 진실과 다른 왜곡되고 굴절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거짓 언어를 우리들에게 전달하거든요. 그것은 언어의 타락이죠. 저는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절망하고 분노를 했어요. 그 언어를, 언어라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거든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이면서 그 매개체를 통해서 사회를 보여주고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런 언어를 거짓의 언어, 굴절된 언어, 왜곡된 언어로서 국민들에게, 우리들에게 전달하는 게 굉장히 절망스럽고 분노스러웠어요. 그래서 제가 광주를 소재로 소설을 제법 많이 썼는데, 그 소설 속에 언어에 대한 관심이 항상 들어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장인하가 식자공이라는 것도 그런 언어에 대한 저희 관심이 간접적인 투영이겠죠.

Q. '식물적 정신'이란 표현은 만든 건가?

제가 그걸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냥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한 거죠. 사실은 우리 사람이 태아가 잉태될 때 저는 과학책을 보고 그걸 알았거든요. 태아가 잉태되면서 두 달 동안은 태아의 구조가 식물의 구조와 가깝대요. 그래서 두 달이 지나면 구조가 동물로 변화해 간다고 하거든요. 그러면 두 달 동안 우리는 식물의 상태였어요. 우리의 몸속에, 우리의 영혼속에 식물의 DNA가 있는 거죠.

그 순간 나는 하나의 식물이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고, 짐승의 이빨이 들어오면 찢기고, 꺾으면 꺾이고, 자르면 잘리는 식물.

Q. 장인하의 정신은 이 시대에도 유효할까?

오히려 더 유효하죠. 더 필요하고, 더 그런 영혼들을 우리가 지금 더 많이 그리워하고 갈구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지금 자본주의 사회가 굉장히 뭔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굉장히 차갑게 만들잖아요. 그리고 타인에 대한 어떤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그런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영혼들에 대한 갈망은 지금은 더 증폭되어 있겠죠.

Q. 소설을 쓴다는 것은?

모든 예술은 제가 알기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그런 기능과 역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뭔가 우리가 현실 속에서는 이제 가령 진실이라는 게 안 보이잖아요. 진실처럼 오리무중인 어떤 생명체인 것은 찾기가 힘들 거예요. 누구나가 말하는 진실들은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어려운 게 가장 보여주기 어려운 게 진실이라는 대상일 거예요. 그거는 진실은 진리와 달라서 어떤 답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것을 찾아나가는 오로지 과정만 있을 뿐이죠. 예술이라는 것도, 소설이라는 것도 그런 진실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예술은 질문이죠. 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죠. 철학이나 종교나 그런 부분들은 답을 제시하는 역할을 갖고 있지만,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는, 그 질문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성찰하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나갈 계획인지?

항상 작품이라는 것은 새로움이어야 되거든요. 새롭다는 것은 소재의 새로움의 측면이 아니고, 뭔가 소설이라는 생명체가 갖고 있는 내면의 새로움이겠죠. 그 내면의 새로움이란 것은 미학적인 새로움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요구되는. 그래서 저는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항상 처음 쓰는 것 같은 혼란에 빠져요. 아마 다른 작가도 다 그럴 거예요. 이 소설이라는 것은 뭔가 이렇게 쓰면 쓸수록 더 뭔가 이렇게 익숙해지는 게 아니고 항상 새로운 작품 앞에 서게 되면 항상 소설이 낯설어지는, 항상 초보자가 뭔가 처음 다가가는 그런 느낌 속에 빠지는 거죠. (연습이 안 되는 거군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그거는 그거는 연습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에너지가 필요한 거죠.

Q.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어라는 것은 굉장히 사실, 더 나아가 진실을 추구하는 어떤 도구이면서 생명체인데 그 도구를 너무나 함부로 쓰는,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쓰는, 그러면서 그 언어가 때로는 폭력이 되거든요. 그런 언어의 폭력에 대해서 굉장히 걱정스러워요. 언어에 대한 어떤 우리의 자세는 좀더, 좀더 주의 깊게, 좀더 정결한 시선으로, 정결한 마음으로 언어를 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작가들이 언어를 다룰 때는 함부로 안 다루죠. 작가는 저는 장인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진정한 작가라면 그 장인은 자기가 만드는 것에서 생명을 느낍니다. 생명체를 만드는 사람이죠. 그 생명체를 함부로 못 만들죠. 그 생명체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그 물건을 제대로 못 만들어요. 그러니까 사랑의 깊이가 그 작품의 깊이가 되는 거죠. 그러려면 그 생명체의 도구가 언어인데, 지금 세상은 언어를 너무나 함부로 사용을 해요. 너무나 남용을 하고. 그러면서 관계와 공동체를 굉장히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어에 대해서 좀더 사려깊은, 좀더 마음가짐을 좀 다르게 가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편집: 성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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