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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50주기, 노동운동의 불꽃
입력 2020.11.12 (21:13) 수정 2020.11.12 (22:18)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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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일주일, 일터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16명입니다.

KBS 9시 뉴스는 지난 7월부터 매주 목요일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일하다 숨진 노동자 현황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넉 달 동안 집계한 사망 노동자만 329명에 이릅니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람보다 훨씬 많습니다.

한국의 노동자에겐 일터의 사고가 코로나19 보다 더 무섭고 위험한 셈입니다.

정부 공식 통계로만 한 해 산재사망자 2천 명.

하루 평균 5.5명이 일하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나라.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 성장과 거침없는 산업화의 이면엔 열악한 노동자들의 삶이, 그리고 20여 년째 OECD 산재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22살 나이에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비참한 노동 현실을 알린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외침입니다.

내일(13일)이면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꼭 50년이 됩니다.

KBS는 오늘(12일)과 내일 연속으로 노동현장의 실태를 집중 분석합니다.

김지숙 기자가 전태일 열사의 뜨거웠던 삶 되짚어 봤습니다.

[리포트]

50년 전 서울 청계천에서 한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22살의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그가 남긴 마지막 외침입니다.

당시 평화시장 근로자는 대부분 18살 남짓의 어린 여성들, 환기도 되지 않는 좁은 방에서 하루 16시간씩 재봉틀을 돌리는 중노동이 이들의 삶이었습니다.

먼지 때문에 폐결핵과 위장병을 달고 살았지만 쉬는 날은 한 달에 한두 번, 하루 급료는 100원에 불과했습니다.

[음성대역/전태일 진정서 中 : "합법적이 아닌 생산공들의 피와 땀을 갈취합니다. 그런데 왜 현 사회는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지 저의 좁은 소견은 알지를 못합니다."]

밤을 새워 근로기준법을 읽고 비참한 노동 실태를 알렸지만 그의 외침을 들어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결국 청년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습니다.

[음성대역/전태일이 대통령에게 쓴 편지 中 :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저는 피끓는 청년으로서 이런 현실에 종사하는 재단사로서 도저히 참혹한 현실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의 희생은 한국 노동운동의 불꽃이 됐습니다.

1970년대에만 전국에서 2천5백여 개의 노동조합이 생겨났습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사회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해서 노동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학생, 재야, 시민사회 그리고 여러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노동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그런 역사의 큰 출발점이..."]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노동자도 인간답게 사는 사회, 전태일의 꿈은 지금도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영상편집:김근환/그래픽:김정현
  • 전태일 50주기, 노동운동의 불꽃
    • 입력 2020-11-12 21:13:01
    • 수정2020-11-12 22:18:29
    뉴스 9
[앵커]

지난 일주일, 일터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16명입니다.

KBS 9시 뉴스는 지난 7월부터 매주 목요일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일하다 숨진 노동자 현황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넉 달 동안 집계한 사망 노동자만 329명에 이릅니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람보다 훨씬 많습니다.

한국의 노동자에겐 일터의 사고가 코로나19 보다 더 무섭고 위험한 셈입니다.

정부 공식 통계로만 한 해 산재사망자 2천 명.

하루 평균 5.5명이 일하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나라.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 성장과 거침없는 산업화의 이면엔 열악한 노동자들의 삶이, 그리고 20여 년째 OECD 산재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22살 나이에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비참한 노동 현실을 알린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외침입니다.

내일(13일)이면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꼭 50년이 됩니다.

KBS는 오늘(12일)과 내일 연속으로 노동현장의 실태를 집중 분석합니다.

김지숙 기자가 전태일 열사의 뜨거웠던 삶 되짚어 봤습니다.

[리포트]

50년 전 서울 청계천에서 한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22살의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그가 남긴 마지막 외침입니다.

당시 평화시장 근로자는 대부분 18살 남짓의 어린 여성들, 환기도 되지 않는 좁은 방에서 하루 16시간씩 재봉틀을 돌리는 중노동이 이들의 삶이었습니다.

먼지 때문에 폐결핵과 위장병을 달고 살았지만 쉬는 날은 한 달에 한두 번, 하루 급료는 100원에 불과했습니다.

[음성대역/전태일 진정서 中 : "합법적이 아닌 생산공들의 피와 땀을 갈취합니다. 그런데 왜 현 사회는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지 저의 좁은 소견은 알지를 못합니다."]

밤을 새워 근로기준법을 읽고 비참한 노동 실태를 알렸지만 그의 외침을 들어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결국 청년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습니다.

[음성대역/전태일이 대통령에게 쓴 편지 中 :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저는 피끓는 청년으로서 이런 현실에 종사하는 재단사로서 도저히 참혹한 현실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의 희생은 한국 노동운동의 불꽃이 됐습니다.

1970년대에만 전국에서 2천5백여 개의 노동조합이 생겨났습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사회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해서 노동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학생, 재야, 시민사회 그리고 여러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노동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그런 역사의 큰 출발점이..."]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노동자도 인간답게 사는 사회, 전태일의 꿈은 지금도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영상편집:김근환/그래픽: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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