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53) SK 와이번스 감독대행이 25일부터 펼쳐지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패권을 다투기 위해 고향땅 대구를 밟는다.
명색은 '금의환향(錦衣還鄕)'이지만 대구에 입성하는 이 감독대행의 감회는 이 4자 성어만으로는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대구가 연고지인 삼성이 배출해낸 최고의 스타 선수였음에도 구단과의 불화로 인해 변변한 은퇴식도 치르지 못하고 도망치다시피 하며 떠나야 했던 곳이 바로 대구이기 때문이다.
이만수 SK 감독대행은 대구 토박이다.
대구중-대구상고(현 상원고)를 졸업한 그는 한양대 시절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를 거치며 특급포수로 성장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고향팀인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 그는 통산 1천449경기에 출장해 타율 0.296, 홈런 252개, 타점 861개를 기록했다.
1984년에는 타율 0.340, 홈런 23개, 타점 80개를 기록하며 한국야구 최초의 타격 3관왕이라는 대업을 달성하며 프로야구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화려한 기록만으로 대구 시민이 이만수 감독대행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16년간 오직 삼성의 푸른 유니폼만을 입었고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과 독특한 세리머니로 대구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대구 시민에게 그는 단순히 '뛰어난 선수'를 넘어 삼성 그 자체이자 대구의 자랑이었다.
"내 몸에는 푸른 피가 흐를 것"이라며 삼성에 깊은 애정을 표시했던 그였지만, 떠나는 뒷모습은 쓸쓸했다.
프로야구 원년멤버로서 딱 마흔 살까지 선수 생활을 하려는 바람과 구단의 은퇴 요구가 갈등을 빚으면서 그는 결국 흔하디흔한 은퇴식도 치르지 못하고 1998년 자비로 미국 연수를 떠나야 했다.
그는 당시 심경에 대해 "정상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청춘을 바쳤고, 누구보다 사랑했던 삼성에서 차갑게 내쳐졌으니 그럴 만했다.
이만수 감독대행과 삼성이 극적으로 화해할 기회도 있었다.
삼성은 2003시즌을 마치고 그를 코치로 영입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이를 돌연 취소했다.
자신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했던 삼성으로 복귀한다는 생각에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날짜만을 세고 있던 그는 더 큰 상처를 받고 말았다.
다행히 다시 미국프로야구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그때 그 상처가 쉽게 아물 리 없다.
그는 2006년 9년간의 미국생활을 마감하고 마침내 국내로 돌아왔다.
그를 받아준 곳은 푸른 유니폼의 삼성이 아니라 빨간 유니폼의 SK였다.
그리고 그는 이제 SK의 수장으로서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다른 팀도 아닌 삼성과 적으로 만나 그야말로 외나무다리 대결을 펼치게 됐다.
이만수 SK 감독대행은 지난 23일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승리로 이끈 뒤 기자회견에서 친정팀인 삼성을 상대하는 심경을 묻자 "미국에서 귀국하고 나서 처음 삼성과 경기할 때 마음이 뒤숭숭했지만 5년이 지나니 별 느낌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대구구장에서 절반의 팬은 삼성을, 절반의 팬은 나를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대구 시민의 '헐크 이만수'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겠지만, 이만수 SK 감독대행에게 삼성은 절반은 애정, 절반은 미움으로 뒤섞인 팀일 것이다.
삼성과 SK의 한국시리즈는 1년 만의 재격돌이라는 점 이외에도 이만수 SK 감독대행의 뿌리와 연결돼 한층 더 시선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