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플레이오프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와 SK 와이번스가 '중심 타자 딜레마'에 빠졌다.
양팀의 4번 타자인 이대호(29·롯데)와 이호준(35·SK)이 중심타자로서의 역할은 커녕 공격의 흐름을 맥없이 끊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방은 갖췄으나 터지지를 않으니 본인은 물론 벤치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롯데의 '거포' 이대호는 지난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SK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1차전에서 5-6으로 뒤지고 있던 8회말 2사 2루에서 천금과 같은 동점 적시타를 쳐내며 살아나는가 싶더니 2차전에서는 4타수 무안타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9타수 1안타(0.111)를 기록했다. 중심타자로서 낙제점에 해당한다.
정규시즌에서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상위에 자리매김할 정도로 펄펄 날았던 것과 비교할 때 부끄럽기까지 한 성적이다.
상대 투수들이 이대호와 까다로운 승부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실점 위기였다면 걸러도 좋다는 생각으로 좋은 공을 주지 않았겠지만, 2차전에서 이대호는 세차례나 주자 없는 상황에서 등장해 범타로 물러났다.
롯데의 2차전에서 나머지 타자들이 골고루 맹타를 휘둘러 4-1 승리를 이끌면서 이대호의 '나홀로 부진'은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1차전 때만 해도 양승호 감독은 "8회말 동점 적시타를 때려준 것만 해도 4번 타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며 이대호를 두둔했다.
하지만 2차전에서도 부진이 깊어지자 양 감독은 태도를 바꿔 "이대호가 살아나야만 3, 4차전 경기를 수월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양 감독이 지적했듯이 이대호가 더욱 확실하게 타선을 이끌어갔다면 롯데의 1, 2차전 성적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2경기만으로 단정을 지을 수는 없지만 이대호의 플레이오프에서의 모습은 리그 최고의 타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SK의 이호준도 이대호와 마찬가지로 팀의 다른 타자들이 펄펄 나는 사이 홀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3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던 이호준은 2차전에서도 상대 투수에게 전혀 위협감을 주지 못했다.
이호준은 2차전에서 1회초 2사 1루에서 삼진, 4회초 1사 1루에서는 3루수 앞 병살타에 그치며 이만수 SK 감독대행을 한숨짓게 했다.
7회초 볼넷을 얻은 것이 유일한 출루였을 정도다.
플레이오프에서 점점 살아나는 SK 타선에서 이호준은 거의 유일한 '솜방망이'라고 할 정도다.
이만수 감독대행은 "이호준을 4번에 배치한 것은 고참 선수이고 주장이기 때문"이라고 밝혀 공격력을 우선으로 고려해 4번에 기용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팀의 4번 타자는 팀의 중심이고 리더격에 해당한다.
4번 타자가 필요할 때 제 구실을 못하며 팀 화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1, 2차전에서 나란히 침묵에 빠진 이대호와 이호준이 오는 19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리는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맹타를 휘둘러 승부의 추를 돌려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