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 잔치 마지막 무대인 한국시리즈에서는 초반 승부를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강력한 불펜진을 앞세운 삼성과 SK의 한국시리즈는 초반에 점수를 뽑은 팀이 기선을 잡아 고스란히 승리를 지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25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은 사실상 5회가 넘어가면서 승부가 갈렸다.
SK 이만수 감독대행은 4회말 2점을 빼앗긴 뒤 5회 공격에서 타자들이 바뀐 투수 차우찬에게 삼진 2개를 헌납하고 허무하게 돌아서자 6회부터 추격조 이재영을 투입했다.
두 번째 투수였던 고든의 투구수가 20개밖에 되지 않았고 1⅓이닝 무실점으로 잘 버티고 있었음에도 새 투수를 선택했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이재영은 경기의 패색이 짙어졌을 때 필승조를 아끼기 위해 이 대행이 내미는 카드다.
지난 20일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도 경기를 뒤집기 어려워지자 마운드에 올라 필승 계투조의 체력을 아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재영에 이어 등판한 이승호도 올해 포스트시즌에서는 예전과 같은 위력을 보여주지 못한 터였다.
2점 차이밖에 나지 않았고 공격 기회가 4번이나 남았음에도 경기에서 질 것을 계산에 넣고 체력 안배에 나선 것이다.
이 대행도 "하루만 쉬고 경기를 치르는 터라 총력전으로 가기 어려웠다. 투수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승리조를 아끼려 했다"고 시인했다.
포스트시즌 내내 KIA·롯데와 명승부를 펼치고 올라왔던 SK가 이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한 것은 삼성의 불펜진이 생각 이상으로 막강하기 때문이다.
오승환을 정점으로 안지만, 정현욱, 권혁, 권오준, 정인욱 등이 버틴 계투진은 한번 리드를 잡으면 좀처럼 역전을 내주지 않는다.
게다가 차우찬까지 구위를 회복하고 롱맨으로 불펜에 합류하면서 왼손 계투진도 훨씬 풍부해졌다.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선발보다는 불펜 보강에 초점을 맞춘 삼성 류중일 감독은 "5~6회까지만 1~2번째 투수가 막아 주면 된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SK로서는 초반에 앞서나가지 못하면 플레이오프나 준플레이오프처럼 경기를 뒤집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이는 삼성도 마찬가지다.
25일 경기에서 삼성 타자들은 SK와 똑같은 5개의 안타밖에 치지 못했다.
그나마 최형우가 2루타 2개로 맹활약했고 신명철이 득점 기회에서 적시타를 때려 결승점을 뽑았지만, 6회 1사 만루 기회를 놓치는 등 아직 타격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모습이었다.
SK 투수들이 경기를 많이 치러 체력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타격감이 떨어진 삼성 타자들이 고든과 박희수, 정대현, 정우람 등이 지키는 계투진을 뚫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두 팀 모두 가장 먼저 나오는 선발투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먼저 공략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1차전에서도 SK가 1~3회 연달아 주자를 득점권에 보내 놓고도 선취점 획득에 실패하면서 기회가 삼성으로 넘어갔고, 삼성은 4회의 첫 기회에서 점수를 뽑았다.
이 점수는 삼성의 결승점이 됐다.
남은 한국시리즈에서도 이렇게 초반 기회에서 어느 팀이 더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느냐가 승부의 갈림길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