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비준, 특허권 강화…제약업계 ‘울상’

입력 2011.11.22 (17:06)

'약가 일괄 인하' 겹쳐 "제약산업 기반 붕괴" 우려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22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국내 제약업계는 한 마디로 "올 것이 왔다"는 반응과 함께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비준안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특허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복제의약품의 제조·시판을 유보하는 '허가특허 연계제도' 도입이다. 미국 대형 제약사들의 신약 특허권 강화를 인정하는 내용으로, 국내 제약사들에게 전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보건상품 관세의 경우 민감품목에 한해 한국 측은 최대 10년, 미국 측은 최대 5년 안에 완전히 없어진다.

한국의 경우 76.8%에 해당하는 463개 품목의 관세가 즉시 철폐되고, 122개(20.2%) 제품은 3년안에 관세가 사라진다. 즉시 철폐 품목은 백신, 스테아르산 등 의약품과 애프터셰이빙로션, 의료용 의자, 주사기 등이며, 아스피린제와 인공신장기 등은 3년내 철폐 대상에 포함됐다.

비준안에 따르면 보험의약품 등재 과정에서 업계의 이의를 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공단 등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 검토하도록 하는 절차도 마련된다. 약품·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과 비임상시험기준(GLP)의 상호 인정도 추진된다.

다만 보건의료서비스 시장은 포괄적으로 개방하지 않고 현행 규제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종합적으로 득실을 따져보면, 국내 제약산업은 한미FTA에 따른 대표적 피해 업종 가운데 하나다.

우선, 한미FTA 발효로 지적재산권 보호 의무가 강화되면 국내 업체가 제네릭의약품(복제약)이나 개량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복제약 시판 허가·특허연계 이행 의무를 3년 동안 유예하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국내 제약산업의 충격을 덜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협정에 보장된 자료독점권 등은 사실상 특허 연장의 효과를 갖는다"며 "국내 제약산업은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의 약값 부담 역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협정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가 외국 신약을 바탕으로 생산한 복제약이나 개량신약에 대해 다국적 제약사가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할 경우, 즉시 허가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

결국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복제약이나 개량신약은 중단 기간만큼 출시가 늦춰지거나 생산 자체가 무산돼 결국 소비자들은 비싼 오리지널 약을 구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정부 역시 한미FTA로 제약업계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한미FTA 발효 이후 국내 복제의약품 생산은 10년동안 연평균 686억~1천197억원 정도 감소하고 시장 위축에 따른 소득 감소 규모도 457억~797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또 협정 발효 이후 제약업계의 대미 수입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1천923만달러 증가하는 반면, 수출은 같은 기간 연평균 334만달러 늘어나는 데 그쳐 무역수지 적자가 1천590만달러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제약 분야는 농업과 함께 한미FTA의 대표적 피해산업"이라며 "여기에 정부로부터 일괄 약가 인하라는 징벌까지 받으면 제약인 2만명, 관련업계까지 포함해 10만명의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현재 제약업계는 한미FTA 발효라는 악재에도 불구, 정부가 일괄 약가 인하를 강행하려는데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제약업계 종사자 약 1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제약인 생존 투쟁 총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는 110여년 제약산업 역사상 최초의 궐기대회다.

제약업계의 자체 추산에 따르면 정부가 입안예고한대로 내년 1월부터 특허가 끝난 약의 보험 상한가격을 특허만료 전 수준의 53.55%(현재 68~80%)까지 일괄적으로 낮출 경우 예상되는 손실은 약 2조원에 이른다.

이 같은 막대한 피해에도 '적자'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판매관리비를 줄여야 하는데, 구조조정 등을 통해 인건비를 절반 수준으로 깎고 광고홍보와 연구개발에 전혀 투자하지 않는다 해도 절감 가능한 비용은 1조3천195억원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항상 의약품 산업을 미래성장동력으로 꼽으면서도 FTA 체결을 방관하고 약가 인하를 밀어붙이는 등 위기로 내몰고 있다"며 "자칫 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될 위기"라고 경고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미FTA 등을 계기로 국내 제약산업 전반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불법 리베이트는 만연한데 비해 기술 개발은 더뎌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잃어버린데 대한 업계 스스로의 반성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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