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가 부정출발로 충격적인 실격을 당하면서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의 왕좌는 사실상 무주공산이 돼 버렸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볼트는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3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출발 총성이 울리기도 전에 스타트블록에서 몸을 움직여 실격했다.
볼트 없이 재개된 결승전에서 요한 블레이크(23·자메이카)가 9초92의 기록으로 우승해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블레이크는 자메이카 국기를 몸에 두른 채 단거리 왕좌에 오른 기쁨을 만끽했으나 이를 지켜보는 팬들의 마음에는 허탈한 기분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애초 이번 대회에서 치열한 3파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볼트와 아사파 파월(29·자메이카), 타이슨 게이(29·미국)가 빠진 상태에서 치러진 결승전이었기 때문이다.
세 선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단거리 최강자 자리를 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해 왔다.
게이가 먼저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100m와 200m, 400m 계주를 석권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고, 파월이 이어 여러 차례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여기에 볼트까지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세 선수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팽팽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줬다.
특히 압도적으로 앞서 나가던 볼트가 지난 시즌 부상을 거치며 하향 곡선을 그려 어느 때보다도 올해 대회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게이와 파월이 잇달아 부상으로 불참을 선언한 데 이어 볼트까지 실격하면서 완전히 김이 새고 만 것이다.
게다가 하필 볼트가 탈락한 종목이 100m라는 것이 더 아쉽다.
전통적으로 100m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간을 가리는 종목으로 널리 공인받아 왔다.
그러나 강호들이 모두 빠진 가운데 블레이크가 '어부지리'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날 블레이크의 기록인 9초92는 13차례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우승자 가운데 8번째에 불과한 기록이다.
2년 전 베를린이었다면 4위로 메달권에도 들지 못한다.
아직 발전할 가능성이 큰 기대주이기는 하지만 '육상의 꽃'으로 불리는 종목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결국 세계 육상 팬들이 기대해 온 '단거리 왕좌'의 주인은 1년 뒤 열리는 런던 올림픽에서 가려지게 됐다.
볼트는 물론이고 게이와 파월 모두 런던에서 결전에 나서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번 대회 우승으로 자신감을 얻고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블레이크까지 가세한다면 '인간 탄환' 경쟁은 한층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