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산악인들이 히말라야 봉우리를 오를 때 늘 동행해 함께 정상을 밟는 셰르파.
박영석 대장 일행의 실종으로 셰르파에 대해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24일 현지인 등에 따르면 셰르파는 몽골족의 하나로 종족명이자 성씨다.
이들 셰르파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 산악인의 등정을 돕는 일을 하면서 셰르파는 외국인들에게 ’산악인 안내자’를 뜻하는 하나의 일반명사가 됐다는 것.
네팔의 셰르파 종족은 약 1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들중 70%가 히말라야 산악지대에 거주한다.
셰르파 종족 가운데 3만명 가량이 이른바 산악인 안내자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몽골족의 또다른 종족 중 하나인 따망족이나 구룽족도 간혹 셰르파 일을 한다.
산악인 안내를 하지 않는 셰르파 종족은 농사나 수공예 등에 종사한다. 물론 도시로 나가 직장을 잡는 경우도 많다.
셰르파는 태어나면서부터 산을 타기 때문에 의학적으로도 폐가 큰 것으로 증명됐다.
이런 사정으로 외국인이 등정할 때는 며칠간의 고소 적응이 필요하지만 셰르파는 이런 과정이 필요없다.
한 셰르파는 베이스캠프에서 에베레스트까지 8시간만에 돌파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 셰르파는 산악인이 봉우리를 오를 때 앞서 가며 길을 안내하고 로프를 설치기도 한다.
산악인이 히말라야 고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대부분 셰르파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박 대장은 이번 원정에선 셰르파의 도움없이 안나푸르나 등정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셰르파가 외국 산악인을 돕는다는 것은 ’손님’과 생사를 같이함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외국 산악인이 셰르파와 함께 산을 오르고 나면 ’형제’ 사이가 된다.
특히 셰르파가 외국인 여성의 등산을 돕다가 사랑이 싹 터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일례로 한 셰르파는 1990년대초 미국 시카고 시장의 딸을 도우며 히말라야를 오르다 ’눈이 맞아’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 현지언론에선 이 소식이 큰 화제가 됐다고 한다.
그는 결혼 후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해 의사가 됐다. 이후 고향이 그리워 네팔로 돌아와 의사협회장도 맡았다고 한다.
셰르파가 받는 보수도 최근 들어 급등했다.
1990년대에만 해도 일당이 우리 돈으로 3천원 수준이었으나 10년간의 내전이 끝난 이후에는 오르기 시작해 현재는 1만5천원이다.
전문 산악인들은 내전과 상관없이 네팔을 찾았지만 내전 이후 나라가 안정되면서 등정이 아닌 트레킹을 하려는 외국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셰르파의 ’몸값’이 뛰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다 잠시 귀국했다는 네팔인 라구 티르파티씨는 "셰르파가 원래 종족명이자 성씨인데 많은 외국인들이 ’산악인 안내자’로만 알고 있다"며 "셰르파의 뜻이 제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